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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공감각적(synesthesia)이다.
'종합지'는 이러한 '공감각의 지적 확장'이 된다.
공감각이 미적 감수성의 가장 고급한 형태라면 종합지는 궁극적인 이해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앎과 느낌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통합한 것을 말한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상태에 이른 종합 지적인 사고의 모습이다.
'통합적 이해'는 감각적 인상과 느낌, 지식과 기억이 다양하면서도 통합적인 방법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과학자는 우주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본다.
시인은 시간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느낀다.
- 미국 소설가, 번역가, 곤충학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과학, 미술 그리고 시(詩)'의 훈련을 제대로 받은 나보코프에게 한번에 여러 가지 생각하는 능력, 즉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여러 겹의 의식'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 기억과 사고는 항상 다중감각적이었으며 감정적인 동시에 지적이었다.
체험에 대한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태도는 그가 썼던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나보코프와 라이트힐이 보여주고 있는 통합적 사고의 세계는 분명히 경험의 일반적인 범주(아는 것을 느끼고 느끼는 것을 안다는)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해는 생각도구들을 통합적으로 사용할 때 가능한 것이다.
생각도구들을 통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란
첫째, 감각적인 인상과 느낌을 종합한다는 것이다.
둘째, 감각적으로 종합된 것을 패턴이나 모형, 유추 등 고차원적 형태로 구축하여 기억 속에 저장하고 있는 추상적 지식과 함께 아우르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많은 수재들은 통합적 이해를 위해 '세계에 대한 다중감각능력'을 계획적으로 배양하려고 노력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글자들이 다양한 색을 띤 수학기호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방정식을 볼 때면 그 글자들이 색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말을 할 때마다 얀케(Jahnke)나 엠데(Emde)의 책에서 본 베셀 함수(Bessel function)가 희미한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을 본다.
j는 밝은 황갈색, n은 엷은 자청색, x는 흑갈색을 띤 채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이다.
나는 그것들이 학생들에게는 대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 리처드 파인만
나는 거리를 걷듯이 그림을 그린다.
색을 냄새 맡고, 보고, 느낀다.
- 독일 화가, 에른스트 바를라흐 (Ernst Barlach)
"여러분, 괜찮다면 조금만 더 푸르게 연주해주시오. 이 키(*음조, key)에는 그게 맞아요."
- 헝가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가 자신의 오케스트라에게 한 말 中
*음조: 소리의 높낮이와 강약, 빠르고 느린 것 등의 정도
라벨 작품의 경우 어떤 악절은 온통 파란색과 녹색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푸르름과 투명함은 나에게 아주 세련되고 아름다운 17세기 중국을 생각나게 한다.
-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eny)
시각 혹은 소리가 촉발하는 연상과 더불어, 지각의 융합은 촉각이나 미각 같은 다른 감각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무언가를 평상시와 다른 방법으로 만졌을 때 색들을 본다.
그 색들은 대체로 밝고 빛난다.
벨벳만큼 깊고 어두운 검은색을 배경으로해서 남색, 녹색, 파란색들이 광채를 내는 것이다.
- 예술가, 캐롤 스틴 (Carol Steen)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
이 모든 다양하고도 특이한 감각융합현상들은 '공감각의 형태'를 띤다.
공감각이란 말은 그리스어에 어근을 두고 있는데 '융합', '결합', '다 같이'를 뜻하는 'syn'과 감각을 뜻하는 'aisthesis'가 합쳐진 말로, '한꺼번에 느낀다', 혹은 '감각의 융합'을 의미한다.
의식적인 감각이나 융합과 그것의 강도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
감각을 융합시키는 힘이나 강도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이토윅을 비롯한 많은 신경학자들은 이렇게 비자발적이고 항상 일어나는 감각 융합이 '진정한 공감각'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신경의학적 질환이라고 생각한다.
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문 것에 관한 돌연하고도 강렬한 기억을 묘사한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 나타난 묘사는 연상적 공감각의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에게 차에 적신 과자의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간과 경험의 모든 부분에 연결된 생생한 감각적 세부들을 일깨워준다.
나는 공감각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정상적인 뇌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 미국 신경학자, 리처드 사이토윅 (Richard Cytowic)
'감각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다양한 표현 형식'들을 결합시킨다.
'통합'이라는 말에는 감각적이거나 미학적인 것 이상의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나보코프와 라이트힐 모두 공감각은 사물을 한가지의 지각 양식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의 경험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정의를 차용할 수 있다.
아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며, 이해한다는 것은 앎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감각적으로 경험한 것을 능동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나는 높고 딸랑거리는 소리를 상대할 때도 있고, 단단하고 날카롭고 짧은 소리를 상대할 때도 있으며 낮고 대담한 소리, 살찐 소리, 쿠션에 앉아 있는 듯한 감미로운 소리를 상대할 때도 있다.
- 타악기 연주자, 에벌린 글레니 (Evelyn Glennie)
글레니에게 있어서 공감각은 그녀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12살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뒤에도 글레니는 다른 감각을 이용해서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일반적으로 '듣는다'라고 표현하지만 제 경우엔 보는 게 곧 듣는거죠.
만일 누군가가 연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걸 보면서 저는 '아, 소리가 나겠구나' 하고 추측합니다.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거죠. 그러면서 저는 '듣는' 겁니다.
이게 제 소리 세계를 이루고 있는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전적으로 상상과 감촉과 느낌에 의한 것이죠. 보는 것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가진 모든 감각을 다 사용하는 겁니다.
- 에벌린 글레니
내 손은 감촉으로 모습과 소리를 불러내지.
감각들은 끝없이 자리를 서로 바꿔가며
동작과 모습을, 향기와 소리를 연결해주는구나.
- 헬렌 켈러가 쓴 시 中
만일 시각장애인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상상해낼 수단을 전혀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마음은 상실된 육체적 감각에 해당하는 것을 제공해줍니다.
그것을 통해 외면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의 유사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일치를 지각할 수 있는 거지요.
- 미국 작가이자 교육자, 헬렌 켈러 (Helen Keller)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감각융합능력을 키우건 안 키우건 간에 '생각'이라는 것은 '감각과 지식 사이에 만들어지는 결합'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감각기관들이 따로따로 지각 작용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통합하고 조정해야 한다.
사과의 붉은색을 단맛과 연결시키는 능력 역시 감각이 통합적으로 기능할 때 가능하다.
'사과'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 대부분은 공감각적 연상작용에 따라 마음의 눈으로 사과 한 알을 동시에 보게 된다.
그다음 마음의 손으로 그것을 집어 그 매끈한 껍질과 촉촉한 질감을 느끼고, 마음의 입으로 달콤한 맛을 보며, 마음의 코로 독특한 향을 맡고 마음의 귀로 '와삭' 한 입 베어 무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영혼에 관하여>를 쓰면서 감각의 융합을 이해했다.
그는 '단맛과 짠맛', '흰색과 붉은색'을 구분하는 능력은 해당 감각 안에 내재되어 있긴 하지만 '흰색과 단맛', '짠맛과 붉은색'의 차이를 파악하는 능력은 이 모든 감각이 통합되는 경우에만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다.
감각(sense)과 감성(sensibility)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사과'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고 소리 내어 발음할 수도 있으며 그림으로 그려볼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식물학자라면 사과의 학명(생물학에서 생물의 종에 붙인 분류학적인 이름)을 술술 말할 수 있거나 진화 계통상의 친척(들장미 같은) 목록을 쭉 꿸 수 있을 것이다.
농부라면 사과가 어떤 해충에 취약하고 어떤 양분이 필요하고 사과가 좋아하는 환경은 무엇이고 kg당 얼마에 팔리는지 등 사과와 관련된 수만 가지의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두 한 단어 혹은 우리 혀가 알고 있는 맛에서 연상된 결과다. 이것은 단순히 감각의 결합 이상의 것으로 공감각적 앎이라 할 수 있다.
즉 감각, 느낌, 기억, 그리고 합리적 사고가 결합된 것이다. 모든 창조적인 작업은 이것에 기초하고 있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돼라
창조적 이해가 갖고 있는 '통합적 성격'을 인지하는 일은 너무 드물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마땅히 없다. 그래서 우리(저자들)는 'synosia'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 말은 결합이나 합성을 듯하는 그리스어의 'syn'과 지식을 뜻하는 'gnosis', 혹은 이성이나 인식의 작용을 뜻하는 'noesis'에서 파생시켜 만들었다. 이 신조어는 영어 발음으로 들으면 다른 형태의 지식이 결합된 것, 혹은 종합적인 앎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 이상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느끼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느끼는 것'임을 줄기차게 언급해왔다.
듣고 보는 것은 수동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것들은 능동적인 지성을 요구한다.
우리가 시각장애인(혹은 청각장애인)이냐 아니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과를 먹는 일은 감각적인 체험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과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농학적, 식물학적, 화학적, 물리학적, 경제학적 과정에 대한 이해를 육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지(綜合知, Synosia)는 공감각의 지적 확장이 된다.
공감각이 미적 감수성의 가장 고급한 형태라면 종합지는 궁극적인 이해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앎과 느낌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통합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synosia(종합지)라는 단어는 synesthesia(공감각)와 gnosis(지식), 혹은 noesis(지각)를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가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란
두서없는 추론을 애써 한 끝에 드디어 어떤 느낌, 감정과 확고한 연합체를 형성했을 때다.
이성과 직관이 이러한 협력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각각으로는 가질 수 없는 창조적인 힘을 소유하게 된다.
- 생물학자, 아그네스 아버 (Agnes Arber)
지성(知性)은 아무것도 직관(直觀) 하지 못한다.
감각(感覺)은 아무것도 사유(思惟) 하지 못한다.
오직 둘의 결합을 통해서만 지식(知識)이 태어난다.
-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의 저서 <순수 이성 비판> 中
Synosia는 형성화, 유추, 모형 만들기, 놀이, 그리고 변형의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결과다.
비록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새로운 것을 규정하거나 만들어내기 위해 일련의 변형 작업을 단계적으로 행했다 해도, 그 개인이나 집단은 변형이 끝난 것을 하나의 전체로서 이해한다.
게다가 창작자들은 창작이 진행되는 도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 최초의 고안 단계에서부터 흥분상태에서 느낀 감정적이고 고유 수용 감각적인 느낌, 좌절, 마지막에는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억하게 된다.
나는 내가 연구하는 동물처럼 사고한다.
그것이 어떤 종(種)이든 구애받지 않는다.
도마뱀을 관찰할 때는 도마뱀이 되고, 물고기를 주시할 때는 물고기가 된다.
-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 (Desmond Morris)
모리스는 과학자와 화가의 시각에서 동시에 동물의 특징을 연구하고 시각적으로 분석했으며 감응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생체 표현(biomorphs)이라고 부른, 상상의 신체기관을 가지고 일종의 '사고 실험'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식의 상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프랑수아 자코브의 말을 상기해보자.
과학이란 가상세계나 가상세계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고안해내고, 그것을 '실제 세계와 맞춰보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랑스 병리학자, 유전학자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자코브 (François Jacob)
화가로서 모리스는 가상세계를 그려냈고, 과학자로서의 모리스는 그것을 실제세계와 대조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은, 모리스의 말을 인용하면 '특정한 학문분야를 뛰어넘는 지식'의 형태였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종합 지적인 사고의 모습이다.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로
통합적인 앎의 방식은 모든 창조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서 추구하는 것'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일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synosia'의 개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통합에 이르러야만 완전해진다고 믿었다.
나는 지금껏 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이 아니면 관심도 갖지 않았다.
완전한 인간이란 자신의 '전 감각'과 '정신적 능력'과 '지적 장비'로 무장한 사람을 지칭한다.
-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그는 심지어 녹음된 음악도 듣지 않았다.
음악이 '운동감각적으로 연주되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듣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몸이고, 몸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둘을 별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담기 위해 몸을 사용하고 몸을 고양하기 위해 마음을 사용하는 사람은 시간을 초월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일종의 '천상적 현실'을 갖게 되며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에 천국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 독일 예술가, 오토 피네 (Otto Piene)
춤은 빛이고 색이며, 동작이고 음악이다.
또한 그것은 관찰이고 직관이며 최종적으로는 이해다.
- 미국 배우이자 무용가, 로이 풀러 (Louie Fuller)
음악을 작곡하거나 감상할 때 '세 가지 수준'을 동시에 의식해야 한다.
첫째는 감각 수준, 둘째는 표현(정서) 수준, 셋째는 순전히 음악(지식) 수준이다.
- 미국 현대 작곡가, 애런 코플랜드 (Aaron Copland)
리처드 파인만 같은 경우 물리학을 얘기하면서도 특유의 시적 어조를 잃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전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특히 시인들)을 힐난한다.
시인들은 과학이 별의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고 말을 한다. 별을 단지 가스 원자 덩어리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밤의 사막에서 별을 볼 수 있고, 또 느낄 수 있다. 나라고 해서 뭔가를 덜 보거나 더 보겠는가?
하늘의 광대함은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회전목마 위에 앉아서 이 작은 눈으로 백만 년이나 된 별빛을 본다.
별이 만들어내는 저 방대한 무늬, 나는 그 일부가 된다.
저 무늬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왜 저렇게 보이는가?
별들에 대해 과학적 지식이 있다 한들 그것은 저 신비로움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진리야말로 과거의 어떤 예술가들이 상상한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경이롭기 때문이다.
왜 오늘날의 시인들은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는가? 목성이 마치 인간인 것처럼 말하는 시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게 메탄과 암모니아로 이루어진 거대한 자전체라면 그들은 침묵해야 하는가?
-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다재다능한 건축가, 공학자, 교육자였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이러한 통합의 정신을 가지고 *바우하우스 이념의 터를 닦았다.
*바우하우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서 설립·운영된 학교로,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과 관련된 종합적인 내용을 교육하였다.
미술작품들은 물질적 세계, 지적 세계 그리고 정신적 세계의 법칙들을 동시에 구현한다.
-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현대 생활과 교육에 남겨진 과제는 '시와 물리학', '미술과 화학', '음악과 생물학', '무용과 사회학' 그리고 기타 가능한 모든 '미학적 지식'과 '분석적 지식'을 재통합해서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느끼고자 하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파인만은 진정한 과학자라면 세계에 관해 단지 생각만 하지 않고 느낀다고 믿었다.
그로피우스는 뛰어난 화가라면 세계를 단지 느끼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고자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능동적인 이해'이며 그것은 창조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과학이나 미술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러한 전체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못한다
논리는 미술 판화처럼 찍혀 나온 이미지다.
물론 그 목적과 재료는 다르다.
그러나 예술과 과학과 기술 간의 연계성은 르네상스 시대만큼이나 오늘날에도 강력하다.
20세기가 이룩한 진보를 이해하려면 먼저 수학적 계산과 논리적 구축, 패턴, 시각 이미지, 예술용 소재를 써서 전자적인 발명을 하는 기술적인 과정 간의 연계성을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도구들을 엮어서 의외의 (사고의) 연쇄사슬을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에 흥분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다음 단계의 통합을 꿈꿀 수 있다.
우리에게는 '통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서 단일한 학문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분석적이건, 정서적이건, 아니면 전통적이건 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혁신의 기법이란 항상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다양한 방법론을 가진다.
따라서 미래는 우리가 앎의 방법 모두를 통합해서 '통합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비상상태에 처한 인간성>이라는 에세이에서 버크민스터 풀러는 진화과정에서 과도한 전문화와 분화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인 사람이다.
즉 '종합적 이해력을 갖춘 사람'이지 '세분화된 고급 기술만을 구사하는 기술자'는 아니다.
- 미국 건축가, 작가, 디자이너, 발명가, 시인이자 멘사의 두 번째 회장, 버크민스터 풀러 (Buckminster Fuller)
생물학자, 철학자, 화가인 동시에 미술사가인 C. H. 워딩턴은 예술이나 의학에 적용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72년에 쓴 <미래의 생물학과 역사학, Biology and the History of the Future>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선견지명을 내보이고 있다.
세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오직 '전인, whole men'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기술자, 순수 과학자, 예술가 중 하나만 되는 것을 드러내 놓고 거부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못한다.
- 영국 생물학자, 고생물학자, 유전학자, 철학자, C. H. Wadd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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