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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ira auf der Heide on Unsplash
우리는 몸을 움직여 어떤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야 그것을 인지할 때가 있다. 또한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느낌을 알게 될 때도 많다.
피아니스트들은 근육이 음표와 소나타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손가락에 이 기억들을 저장한다.
그것은 마치 배우들이 몸의 근육 속에 자세와 몸짓의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고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을 떠올릴 때 비로소 '몸의 상상력'이 작동한다.
이때가 사고하는 것이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란 사고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헬렌 켈러는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진동을 느끼면서 음악을 '듣곤' 했다.
또한 발로는 마루판의 진동을, 얼굴과 손으로는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무용수들의 춤을 '보곤' 했다.
침팬지는 어떻게 천장에 달린 바나나를 먹었나?
1925년에 영장류 전문가인 볼프강 콜러(Wolfgang Kohler)는 침팬지의 지능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가 실험했던 것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빈 방에 침팬지들과 막대기, 빈 나무상자 몇 개를 같이 넣고 천장에 바나나를 달아놓았던 실험이다.
침팬지들은 바나나를 손에 넣을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그들은 막대기로 바나나를 쳐서 떨어뜨리거나 상자를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바나나를 집어먹었다.
그러나 콜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영리한 침팬지 한 마리가 바나나를 천장에 달자마자 집어먹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 침팬지가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이걸 알아내려면 독자들이 움직여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침팬지처럼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중략)
힌트는 목말 타기와 나무 오르기에 있었다.
침팬지가 기발하게 머리를 썼을 거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그 녀석은 콜러가 바나나 아래를 지나갈 때 그의 등에 올라타, 어깨를 짚고 바나나를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우리들은 과도하게 머리만 쓰는 경향이 있어서 몸이 먼저 일의 처리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몸으로 생각하는 것은 근육의 움직임, 자세, 균형, 접촉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에 의지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느낌을 알게 된다.

지속적인, 그러나 무의식적인 감각의 흐름이 우리 몸의 동작부위에서 나온다.
우리는 자신의 근육을 살피고, 위치나 긴장상태, 움직임을 끊임없이 재조정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숨어 있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
몸의 긴장이나 촉감, 움직임을 마음속으로 불러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대개 우리들은 이 상상의 느낌을 포착하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그런 느낌들을 설명적인 언어로만 표현하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몸에 대한 이미지가 없음을 잘 알고 있던 켈러는 어느날 그레이엄에게 물었다.
"마사, 도약한다는 게 어떤거죠? 전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레이엄은 그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해 즉시 제자 한 명을 불렀다(그가 바로 머스 커닝햄이다). 그레이엄은 켈러의 손을 잡아 그의 허리에 대보게 했다. 그레이엄은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머스는 켈러의 손을 허리에 붙인 채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스튜디오 안의 모든 눈이 여기에 쏠렸다.
그녀의 손은 머스의 움직임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녀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기쁨으로 바뀌었다. 켈러의 얼굴에 떠오른 그 희열이라니.
그녀는 '어쩜 이렇게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지?'라고 말하면서 공중으로 손을 뻗고 탄성을 질렀다.
켈러는 그레이엄이나 무용수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진실을 감동적으로 확인해주었다.
도약은 생각의 일종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원할 때 내 혀 위에는 이미 그 맛이 있었다.
내 손에는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나는 신호를 보냈다(추정컨대, 제조기 핸들을 돌리는 것 같은 동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내가 아이스크림을 원한다는 것을 아셨다. 나는 손가락 속에서 사고하고 욕망했다.
- 헬렌 켈러

비운의 러시아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

그의 몸에는 지성이 있다.
- 프랑스 시인, 소설가, 극작가, 장 콕토 ( Jean Cocteau )가 바슬라프 니진스키를 두고 한 말

내 앞에 엉겅퀴가 있다.
내 근육신경은 마치 몸이 뜯겨나가는 듯한, 혹은 발작적인 움직임을 경험한다.
내 감각들, 촉각과 시각은 엉겅퀴의 날카롭고 뾰족한 형상(을 따라 움직이는 동작)을 기록한다.
내 정신은 이 꽃의 진수를 목도(目睹)하고 있다.
나는 엉겅퀴를 경험한다.
- 독일 바우하우스 교사, 요하네스 이텐 ( Johannes Itten )

클래스 올덴버그는 조각에 끌린 이유가 작업에 수반되는 '몸의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원래 화가로 출발했지만 곧 회화의 평면성이 싫어졌다.
나는 작품을 손으로 만지고 싶었다.
- 예술가,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 ( Claes Oldenburg )
찰스 시몬스가 조각가가 된 것도 어린 시절 공작용 점토를 가지고 놀았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나는 흙덩이의 일부를 떼어내어 근육질의 레슬러가 드러누운 모양을 만들었다.
점토를 주무르면서 내가 느낀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점토의 느낌, 그것과 내가 이어져 있다는 감각, 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 조각가, 찰스 시몬스 ( Charles Simonds )

내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머리, 찌푸린 이마, 벌어진 콧구멍, 앙다문 입술만이 아니다.
그의 팔과 등과 다리의 모든 근육, 움켜쥔 주먹, 오므린 발가락도 그가 생각 중임을 나타낸다.
-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 François-Auguste-René Rodin )


지휘란 '몸 전체'를 가지고 '음악의 형상'을 춤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 Ozawa Seiji )

과학실험과 그림 그리기는 공통된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근육과 관련이 있을 테지만, 일단은 물질을 다루는 능력을 말한다.
- 발생학자, C. H. 워딩턴 ( Waddington )

오래전에 합금을 개발하던 때의 일이라네.
나는 그때 뭔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느낌을 받았어.
무슨 말이냐면 내가 실제로 어떤 종류의 합금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왔다는 말이지.
경성, 연성, 전도성, 가용성, 변형성 등 금속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성질이 나의 내부에서 글자 그대로 감각을 타고 느껴졌다네.
- MIT 금속학자, 시릴 스탠리 스미스 ( Cyril Stanley Smith ), 1972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 中
손지식이란 것은 이를테면 나사를 얼마나 조여야 제대로 조인 것이며, 얼마나 돌려 깎아야 적당한 나사선이 만들어질 것인지 아는 지식을 말한다.
손지식은 또한 나무나 쇠를 부러뜨리지 않고 얼마나 구부릴 수 있는지, 또 유리를 녹여 붙이거나 불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도 가늠하게 해 준다.
이런 지식은 책에 쓰여 있지도, 청사진에 나타나 있지도 않다.
오로지 몸을 써서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이를 습득할 도리가 없다.

나는 계산을 숫자와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추론과 결합된 촉감으로 처리한다.
나는 시각적 혹은 촉각적인 능력이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주된 것임을 알았다.
또한 문제에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어떤 물리적 상황을 상상해내는 방법도 깨닫게 되었다.
만일 누군가 열 개 정도의 방사나 핵의 상수(constants)를 '느낄' 수 있다면 그는 소립자의 세계를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으며, 이 그림을 입체적이고 정성적(qualitatively)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 수학자, 스타니슬라브 울람 ( Stanisław Ulam )
우리(저자들)는 대학원 시절 한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이름은 오래전에 잊어버렸지만 그는 울람처럼 양자 방정식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세미나 도중에 누군가가 발표한 방정식이 원자의 상호작용을 너무 느슨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는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고, 또 누군가의 발표에서 원자들 간의 간격이 지나치게 좁혀진다 싶으면 당장 화장실이라도 가야 할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서 발표자들은 그가 입을 떼기 훨씬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발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었다.
생각하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하는 것
우리는 결과적으로 언제, 무엇이, 어떤 문제를 표상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가?
육체적으로 불편해질 때 우리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몸이 편안해진다.
단순히 해냈다는 감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발이 절로 굴러지고,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창조적인 작업들을 돌아보면 불쾌감을 동반한 어떤 난문제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 영국 수학자, 철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 버트런드 러셀 ( Bertrand Russell )

배우란 모름지기 날카로운 관찰력과 발단된 근육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안에 저장된 자세와 몸짓을 항상 재생해낼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사고와 몸을 조화롭게 연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러시아 연출가, 배우,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
마음은 몸의 일부가 손실된 뒤에도 여전히 몸의 내적 이미지와 감각을 만들어내며, 또한 그것이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작동시키려고 한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유령사지(phantom limbs)를 만들어낸다.
도구나 장비를 사용할 때 그렇다. 테니스 라켓이나 붓, 첼로, 활 모두 우리 자신의 확장(extensions)이며 인공 장구(裝具)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사용해서 우리는 세계를 조작한다.

위대한 바이올린은 생명이 있는 것이고 바이올리니스트는 그 바이올린의 일부이다.
연주를 할 때 나의 몸은 일종의 청각적 지능이 된다.
즉, 나 자신으로부터 독립되어 완벽하게 조율되고 연주되는 악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이올린 그 자체와 구별되지 않는 '순수한' 음성이 된다.
-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 Yehudi Menuhin )

기술적으로 제일 어려운 것은 인형의 발이 마루에 닿고 있는지 느끼는 일입니다.
인형이 실제 걷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인형의 발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손으로만 감지해야 해요.
- 독일 인형극 전문가, 안톤 바흐라이트너 ( Anton Bachleitner )
좁은 장소에 주차할 때나 차를 차고에 집어넣을 때 운전자는 차가 부딪치지 않고 적당한 자리에 들어가는지 어떻게 아는가?
실제로 차 안에 있는 그들은 차가 어느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주차가 가능한 이유는 그 차들이 운전자의 확장된 '몸'이기 때문이다.
이를 확연하게 알려면 처음 타보는 차를 운전할 때나 주행 방향이 다른 나라에 가서 차를 몰 때를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는 몸 환각을 새 차에 맞출 수 있을 때까지 의식적인 수정을 무수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몸으로 생각하는 연습은 몸을 주로 사용하는 분야에서는 물론이거나와 그 밖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수업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창조적 동작'이라는 것을 한다.
음파 물리학의 원리를 배우는 아이들은 '분자 대형'을 만드는데, 고체일 때는 밀집대형으로, 기체일 때는 느슨한 대형을 만든다.
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서로 어깨가 부딪칠 때의 충격을 통해 파장이 매질에 따라 어떻게 그 통과속도가 달라지는지 경험으로 배운다.
교실에서 가능한 '몸의 사고'는 저명한 생물학자인 J. B. 스콜 할데인(Scott Haldane)이 꿈꾼 과학 유토피아의 연습만큼이나 간단하다.
그 연습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양 만들기 수업이라면 학생들은 특정 모양, 이를테면 궤도운반차나 엄마의 얼굴 모양을 상상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든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그 '모양'을 보거나 어루만지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언어수업을 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물체를 던지거나 죽마를 타고 걷는 것, 혹은 가스용량 분석장치를 사용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묘사하게 시킨다.
말하자면 운동감각적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전해 내려온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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